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아트릭스 여왕 (문단 편집) == 생애 == 즉위할 당시 궁전 문제로 네덜란드 여론이 시끄러웠던 적이 잠시 있다. 베아트릭스 여왕은 즉위 직후 자신이 살 암스테르담 왕궁을 대대적으로 개축할 것을 지시했는데, 이때 들어가는 비용이 엄청났다. 게다가 그렇지 않아도 암스테르담 시민들은 주택 부족 문제로 오랫동안 곤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이로 인한 위화감은 엄청났다. 이 때문에 [[https://en.wikipedia.org/wiki/Amsterdam_coronation_riots|왕궁 개축을 둘러싸고 시민들과 왕실 간의 큰 대립]]이 발생한 적이 있다.[* 정확히는 일반 시민과 크라커 양아치들이 연합해서 벌였던 데모인지라 그야말로 폭동 분위기에 개판 5분 전이 따로 없었다.] '''Geen woning, Geen Kroning!(주택문제 해결하지 못하면 대관식 인정 안 하겠다!)'''라는 말이 이 사건에서 회자된 말이다. 부군은 [[독일]] 출신의 클라우스 폰 암스베르크(Claus von Amsberg, 1926년 [[9월 6일]] ~ 2002년 [[10월 6일]])로, [[히틀러 유겐트|나치 소년단]] 가입 의혹이 불거져 구설수에 올랐다.[* 율리아나 여왕의 부군인 [[리페비스터펠트의 베른하르트 공자|베른하르트 공]]도 비슷한 구설수를 겪었으나, 결혼을 앞두고 잠시 가입했던 친위대를 바로 탈퇴한 데다 2차 대전 시기에는 오히려 반 나치 레지스탕스를 지원했기 때문에 평이 나름 좋은 편이다.] 당시 네덜란드 내의 유대교 랍비들이 결혼을 철회하라고 성명을 낸 것은 물론 일반인들까지도 클라우스 공과의 결혼을 반대했다. 어느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었느냐면, 하객으로 오는 것이 상례인 다른 나라의 왕족이나 귀족들이 시위대에게 혹여 봉변이라도 당할까 봐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연도에 운집한 시민들은 베아트릭스와 클라우스가 탄 마차를 향해 연막탄과 죽은 닭을 던지며 '''클라우스 꺼져라!(Klaus Raus!), 내 자전거 돌리도!'''를 외쳤을 정도. 반 클라우스 여론은 여왕이 [[빌럼 알렉산더르]]를 출산한 후에야 겨우 무마되었다. 결혼식 직후 예배는 [[델프트 신교회]]가 아닌 암스테르담 서교회(Westerkerk)에서 치러졌는데, 델프트 신교회가 공사중이었기 때문이다.([[http://www.unofficialroyalty.com/royal-weddings/dutch-royal-weddings/wedding-of-beatrix-of-the-netherlands-and-claus-von-amsberg-2/|출처]]) 유럽 국가 치고 나치를 좋게 보는 나라가 어딨겠냐만, 네덜란드의 경우 [[1차대전]] 까지만 하더라도 친독 성향의 중립국[* 심지어 네덜란드 군부는 '''독일 편으로 참전하자'''고 대놓고 주장할 정도였다! 다행히 그 제안은 채택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기가 쓰겠다고 수입한 전략물자의 상당량을 독일에 넘겼기 때문에, 전쟁 막바지가 되면 빡친 연합국이 네덜란드 상선단을 압류하는 지경까지 갔다. 물론 네덜란드가 독일에 물자를 넘긴 건 순전히 독일이 좋아서가 아니라 침공 위협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였지만...]이었고, 2차대전 때도 비슷한 포지션으로 남을거라 기대했던 걸 나치 독일이 거하게 통수치며 일방적으로 네덜란드를 침공하면서 전쟁에 휘말려들어갔다. 예나 지금이나 무역으로 먹고 사는 네덜란드 전역에서 [[로테르담]]을 비롯한 유서 깊은 항구 도시들은 철저하게 파괴 당했으며, 지정학적인 전략적 가치가 높았던 네덜란드 지방은 [[대서양 방벽]] 건설을 비롯한 나치의 각종 군사적 거대 기간 시설 프로젝트에 집중적으로 착취 당했다. 때문에 원래 네덜란드인들이 독일과 공유하는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동질성을 고려하면 네덜란드는 유럽 국가 간 민족주의적 적대감이 확연하게 희석된 오늘날까지도 독일인들을 점령기 당시 물자 징발에서 비롯된 '''자전거 도둑'''이란 멸칭으로 부르곤 하는 등 반독 감정의 유산이 상당히 강한 나라다. 게다가 2차 대전의 유산이 기억에서 역사의 영역으로 넘어간 2010년대도 아니고 전쟁 세대 당사자들이 훤히 눈 뜨고 살아 사회의 중추를 담당했던 60년대에 저랬으니 시민들이 분노한 건 당연했다. 아들로 [[빌럼 알렉산더르]], [[요한 프리소]][* 2004년 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은 혼인을 치러 왕위계승권을 박탈당했으며 2012년 2월 [[오스트리아]]에서 스키를 타다가 눈사태에 매몰되는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구조되었으나 18개월 간의 투병 끝에 현지 시간으로 2013년 8월 12일에 [[https://n.news.naver.com/article/076/0002375556|사망했다.]]], [[콘스탄테인]]이 있으며 맏며느리가 [[아르헨티나]] 출신의 [[막시마 소레기에타 세루티|막시마 소레기에타]]이다. 아르헨티나는 국적법이 특이하게 아르헨티나 국적포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소레기에타는 평생 이중국적자로 살게 되었다. 문제는 이 소레기에타가 그냥 아르헨티나 사람이 아니라 비델라 독재정권의 농업장관인 호르헤 소레기에타의 딸이라는 점. 이 때문에 베아트릭스의 아들인 빌럼 알렉산더르가 결혼할 때도 네덜란드는 한동안 여론이 시끄러웠다. [[2013년]] [[1월 28일]], 재위 33년째가 되는 [[4월 30일]]에 퇴위한다고 [[http://media.daum.net/foreign/newsview?newsid=20130129035405633|대국민 연설을 통해 공식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차남인 [[요한 프리소]]가 스키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 상태가 된 것에 충격을 받아 생전 퇴위를 결심했다고 보고 있다.] 아들인 빌럼 알렉산더르가 왕위를 승계하게 되어 네덜란드는 빌럼 3세 이후 123년만에 다시 남성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네덜란드 왕가는 1890년부터 1948년까지 재위한 빌헬미나 여왕, 1948년부터 1980년까지 재위한 율리아나 여왕, 그리고 베아트릭스 여왕으로 3대째 여왕이 통치했는데, 빌럼 알렉산더르에게는 큰딸인 카타리나 아말리아를 포함해 딸만 셋이라서 빌럼 알렉산더르 현 네덜란드 국왕이 병이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거나 또는 어머니 베아트릭스처럼 큰딸 카타리나 왕세녀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생전 퇴위를 하게 될 경우에는 다시 '''여왕의 시대'''가 돌아올 듯 하다. 2013년 4월 30일 예정대로 아들에게 양위하고 할머니 [[빌헬미나(네덜란드)|빌헬미나]]의 선례에 따라 여공([[프린세스]]) 칭호를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